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· 13

고린도전서,
문제 많은
교회에 보낸 답장

파당, 소송, 우상 제물, 은사 다툼까지…
그래도 바울은 그들을 "성도"라 불렀어요

고린도전서 1–16장
여는 글

고린도전서를 읽으면 조금 안심이 돼요. 😄 "초대교회는 다 완벽했겠지" 싶은데, 고린도교회는 편을 갈라 싸우고, 성도끼리 법정에 가고, 주의 만찬에서 누구는 배부르고 누구는 굶고, 예배 시간에 서로 먼저 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요. 문제라는 문제는 다 모인 교회였어요.

그런데 그 편지 속에 재미있는 것들이 숨어 있어요. 침례 준 사람을 깜빡한 바울의 고백, 고린도 옆 운동장에서 열리던 경기, 보도블록에 새겨진 한 성도의 이름, 신전에서 발굴된 흙으로 만든 손발, 그리고 헬라 사람들에게 아람어로 남긴 기도 한 마디까지요. 그 흔적을 따라가면 한 분이 보여요. 나뉜 교회를 다시 한 몸으로 묶으시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예요.

1부

고린도전서는 어떤 책일까?

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

고린도는 두 바다 사이 좁은 땅(지협)에 자리 잡은 항구 도시였어요. 배를 수레에 싣고 6킬로미터 남짓한 돌길로 끌어서 건너편 바다로 옮기기도 했을 만큼 교통의 요지였죠. 옛 고린도는 주전 146년 로마에 무너졌다가, 주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 식민 도시로 다시 세웠어요. 돈과 사람과 신전이 넘치는 도시였어요. 바울은 이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교회를 세웠고(행 18:11), 몇 해 뒤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썼어요(16:8). 대략 주후 53–55년쯤이에요.

사실은 두 번째 편지"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"(5:9). 고린도전서보다 먼저 보낸 편지가 있었다는 말이에요. 그 편지는 지금 남아 있지 않아요. 그러니 "전서"는 사실 우리 손에 남은 첫 번째 편지예요.
질문에 답하는 편지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전해 준 소식(1:11)과 교회가 보낸 질문 편지(7:1)에 답한 책이에요. 그래서 "~에 대하여는"이라는 말로 새 주제가 시작돼요(7:1, 7:25, 8:1, 12:1, 16:1, 16:12).

※ 편지를 함께 보낸 사람으로 "형제 소스데네"가 나와요(1:1). 고린도의 회당장 소스데네(행 18:17)와 같은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.

고린도전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
1
교회 문제 백화점
파당(1–4장), 음행(5장), 성도끼리의 소송(6장), 결혼(7장), 우상 제물(8–10장), 주의 만찬(11장), 은사(12–14장), 부활에 대한 의심(15장). 오늘 교회가 겪는 문제가 거의 다 나와요.
2
그래도 "성도"라 부르다
바울은 첫 인사에서 그들을 "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"이라 불러요(1:2). 그들의 행실이 아니라 부르신 하나님에게서 시작해요.
3
사랑장이 들어 있는 책
"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"로 시작하는 13장이 바로 이 편지에 있어요. 싸우는 교회에 보낸 편지 한가운데예요.
4
성경에서 가장 긴 부활 이야기
15장은 58절에 걸쳐 부활만 다뤄요. 초대교회가 외우던 신앙고백(15:3-5)도 여기 담겨 있어요.
5
헬라어 편지 속 아람어
마지막 인사에 예수님이 쓰시던 아람어 한 마디, "마라나타"가 남아 있어요(16:22). 그 이야기는 2부 마지막 장면에서 해요.

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푸는 바울의 열쇠는 늘 같았어요. "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"(2:2). 세상은 십자가를 미련하다고 했지만,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"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"예요(1:24).

2부

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

침례 명단부터 아람어 기도까지, 편지 곳곳에 숨은 이야기들

1

누구에게 침례를 줬는지
깜빡한 사도

고린도전서 1:10-17 · 사도행전 18:8
고린도 성도들
"나는 바울에게, 나는 아볼로에게, 나는 게바에게, 나는 그리스도에게" — 누구 편인지가 중요했어요.
VS
바울
"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"

고린도교회는 네 편으로 갈라져 있었어요(1:12). 바울파, 아볼로파, 베드로(게바)파, 그리고 "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"는 파까지요. 재밌는 건 마지막 파예요. 예수님 이름마저 파벌 이름이 되어 버린 거예요. 바울은 되물어요. "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"(1:13).

그리고 바울은 "내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침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"(1:14)라고 말해요. 그런데 쓰다가 생각이 났나 봐요. 두 절 뒤에 이렇게 덧붙여요. "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침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"(1:16). 😄 편지를 받아 적게 하다가 "아, 스데바나 집도 있었지!" 하는 바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.

이 깜빡함이 오히려 핵심을 보여 줘요. 고린도 성도들은 "누가 내게 침례를 줬는지"를 자랑거리로 삼았지만, 바울은 그걸 다 기억하지도 못했어요. 누가 물에 담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거든요. 중요한 건 누구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였어요. 그리스보는 원래 고린도 회당장이었어요(행 18:8). 회당장이 믿고 침례를 받은 일도 결국 바울의 자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이었어요.

돌아보기
누구에게 배웠고 누구 편인지보다,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예수님 한 분뿐이심을 기억합니다.
2

고린도 옆 운동장의
시들어 버리는 면류관

고린도전서 9:24-27

고린도에서 조금 떨어진 이스트미아에서는 2년마다 큰 운동 경기가 열렸어요. 올림피아 경기와 함께 헬라 세계에서 손꼽히던 이스트미아 경기예요. 고린도가 이 경기를 주관했으니, 고린도 사람들에게 달리기와 권투는 동네 축제 같은 이야기였어요.

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잘 아는 장면으로 말해요. "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"(9:25). 이 경기의 우승자는 금관이 아니라 소나무나 셀러리 같은 식물로 엮은 관을 받았어요. 며칠만 지나면 누렇게 시드는 관이었죠. 그걸 위해 선수들은 몇 달을 절제하며 훈련했어요.

권투 이야기도 나와요. "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"(9:26), 헛손질하는 권투 선수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이에요. 그리고 "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"(9:27)에서 "치다"는 원래 권투에서 눈 밑을 쳐서 멍들게 한다는 말이에요. 😄 바울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한 방을 날리겠다는 거예요. 이 모든 수고의 끝에는 시들지 않는 관, 곧 그리스도께서 주실 영원한 상이 있어요.

※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던 주후 51년 봄에 이스트미아 경기가 열렸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지만, 바울이 그 경기를 직접 보았는지는 알 수 없어요. 우승자의 관이 어떤 식물이었는지는 시대에 따라 달랐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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며칠이면 시드는 박수를 위해 달리지 않고, 썩지 않는 상을 주실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절제합니다.
3

보도블록에 새겨진 이름과
굶주린 성도의 만찬

고린도전서 1:26 · 11:17-34 · 로마서 16:23

1929년, 고린도의 옛 극장 옆 광장에서 돌바닥에 새겨진 라틴어 글귀가 발굴됐어요. 뜻은 이래요. "에라스투스가 조영관 직을 받은 보답으로 자기 돈을 들여 이 길을 포장했다."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에서 쓴 로마서 끝에 이런 인사가 나와요. "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"(롬 16:23). 고린도교회에 도시의 높은 관리가 있었다는 거예요.

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"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"(1:26)라고 했어요. "하나도 없다"가 아니라 "많지 않다"예요. 큰 집을 가진 부자 몇 명과, 노예와 일꾼 같은 가난한 성도 여럿이 한 교회에 있었던 거예요.

문제는 주의 만찬 때 터졌어요. 당시 교회는 부잣집에 모여 식사를 함께하며 성찬을 나눴어요. 그런데 일을 마치고 늦게 오는 가난한 성도들이 도착하기 전에, 먼저 온 사람들이 자기 음식을 다 먹어 버렸어요. 그래서 "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"(11:21). 바울은 화가 났어요. "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"(11:22).

그리고 바울은 바로 이 대목에서, 오늘 우리가 성찬 때마다 읽는 말씀을 들려줘요. "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"(11:24). 성찬은 배부른 사람의 잔치가 아니라,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똑같이 몸을 내주신 예수님을 함께 기억하는 식탁이에요. 그래서 바울은 "서로 기다리라"고 해요(11:33).

※ 비문의 에라스투스가 로마서 16:23의 에라스도와 같은 사람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려요. 비문의 연대와 "재무관"이라는 직책이 정확히 맞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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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의 식탁 앞에서 늦게 오는 형제를 기다리며, 나와 그를 위해 똑같이 몸을 내주신 예수님을 기념합니다.
4

신전에 흩어진 흙 손발 대신,
하나로 붙은 몸

고린도전서 12:12-27
로마의 몸 비유
배가 쉬어도 손발은 계속 일해야 한다 — 아랫사람은 제자리를 지키라는 이야기
VS
바울의 몸 비유
"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" — 약한 지체를 더 귀히

고린도에는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이 있었어요. 1930년대 이곳을 발굴했더니 흙으로 구워 만든 손, 발, 눈, 귀 같은 몸의 조각들이 무더기로 나왔어요. 병이 나은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로, 혹은 낫게 해 달라고 아픈 부위 모양을 만들어 바쳤던 거예요. 몸에서 떨어져 나온 손발이 신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셈이에요.

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몸 이야기를 해요. 그런데 그의 몸은 떨어져 있지 않아요. "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"(12:15), 여전히 몸이라고요. 그리고 웃음이 나는 질문을 던져요. "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"(12:17). 😄 눈만 커다랗게 굴러다니는 교회를 떠올려 보세요.

몸 비유는 로마 사람들에게도 익숙했어요. 역사가 리비우스는 평민들이 파업하자 한 원로가 "배와 손발" 이야기로 달랬다는 전설을 전해요. 배가 놀고 있는 것 같아도 손발이 먹을 것을 날라 줘야 온몸이 산다는, 곧 아랫사람은 불평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는 이야기였어요. 바울은 같은 비유를 거꾸로 써요. "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"(12:22), 하나님은 "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"(12:24) 몸을 고르게 하셨다고요.

그리고 결론은 이거예요. "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"(12:27). 은사가 화려한 사람도,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도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기에 한 몸이에요.

※ 바울이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의 봉헌물을 염두에 두고 이 비유를 썼다는 것은 일부 학자들의 추정이에요. 리비우스가 전하는 이야기는 『로마사』 2권 32장에 나와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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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눈에 약해 보이는 지체를 쓸 데 없다 하지 않고, 그리스도께서 더 귀히 여기시는 형제로 받아들입니다.
5

결혼식 말씀이 아니었던
사랑장과 희미한 거울

고린도전서 12:31–13:13 · 민수기 12:8
우리가 듣는 곳
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를 향해 읽는 아름다운 축복
VS
원래 있던 곳
방언과 예언을 두고 서로 잘났다고 다투던 은사 싸움 한복판

13장은 결혼식에서 자주 읽지만, 원래는 은사 이야기(12장, 14장) 사이에 끼어 있어요. 서로 "내 은사가 더 대단하다"고 다투던 교회에게, 바울은 "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"(12:31) 하고 사랑을 꺼내요. 방언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"울리는 꽹과리"(13:1)라고요. 예배 시간에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에게는 꽤 뜨끔한 말이었을 거예요. 😄

그리고 이 구절이 나와요. "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"(13:12). 고린도는 청동 제품으로 이름난 도시였어요. 그때 거울은 유리가 아니라 청동을 반들반들하게 닦아 만든 것이라, 아무리 잘 닦아도 얼굴이 뿌옇게 보였어요.

여기 숨은 연결고리가 하나 더 있어요. "희미하나"는 헬라어로 수수께끼로라는 말이에요. 그런데 구약의 헬라어 번역(칠십인역) 민수기 12:8에서 하나님은 모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세요. "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." 이 "은밀한 말"이 바로 같은 단어 "수수께끼"예요. 모세만 누리던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만남을, 그날에는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된다는 약속이에요.

※ 고린도의 청동은 로마 시대 문헌에 명품으로 자주 등장해요. 다만 바울이 고린도산 거울을 특별히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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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은 희미하게 알아도, 그날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뵐 주님을 기다리며 오늘 사랑의 길을 걷습니다.
6

"아직 살아 있는
오백 명에게 물어보라"

고린도전서 15:1-20, 50-58 · 호세아 13:14
호세아 13:14
"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"
VS
고린도전서 15:55
"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"

고린도교회 안에는 "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"는 사람들이 있었어요(15:12). 헬라 사람들에게 몸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 같은 것이라, 몸이 다시 산다는 말이 오히려 이상하게 들렸거든요. 바울은 먼저 자기도 "받은" 신앙고백을 들려줘요. "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"(15:3-4). 많은 학자들이 이 고백을 교회가 가장 이른 시기부터 외우던 신앙고백으로 봐요.

그리고 놀라운 한 줄을 덧붙여요. "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"(15:6). 지어낸 이야기라면 이렇게 쓰기 어려워요. "못 믿겠으면 살아 있는 증인들에게 직접 물어보세요" 하는 말이니까요. 그리고 맨 끝에 자기 이름을 올려요. "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"(15:8). 교회를 박해하던 자기에게까지요.

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게 무너진다고 솔직히 말해요. "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"(15:14). 그러고는 선언해요. "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"(15:20). 마지막에는 호세아의 말씀을 가져와 사망에게 큰소리를 쳐요. 벌에 쏘일까 겁내던 사람이, 침이 빠진 벌을 보고 웃는 것처럼요. 😄 그 침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어요.

돌아보기
죽음 앞에서도 "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" 말할 수 있게 하신, 첫 열매 되신 부활의 예수님을 붙듭니다.
7

헬라 성도들이 외운
아람어 한 마디

고린도전서 16:21-24 · 요한계시록 22:20

바울은 편지를 대개 받아 적게 하고, 마지막에 직접 펜을 들었어요. "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"(16:21). 그리고 바로 이어서 헬라어가 아닌 말을 한 마디 적어요. 마라나타. 개역개정은 이것을 "주께서 임하시느니라"(16:22)로 옮겼어요.

이게 왜 재밌냐면요, 고린도 성도들은 대부분 헬라어를 쓰는 사람들이었어요. 그런데 바울은 이 말을 번역하지도, 설명하지도 않아요.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말이었다는 뜻이에요. 예루살렘의 첫 성도들이 아람어로 드리던 기도가 바다 건너 고린도교회에서도 그대로 불리고 있었던 거예요. 1세기 말쯤 쓰인 초대교회 문서 『디다케』에도 성찬 기도 끝에 "마라나타"가 나와요.

여기서 "주(마르)"는 바로 예수님이에요. 유대인으로 자라 한 분 하나님만 섬기던 첫 제자들이, 자기들의 말로 예수님을 "우리 주"라 부르며 기도했다는 흔적이에요. 성경의 마지막 기도도 같은 기도예요. "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"(계 22:20).

그러고 나서 바울은 이렇게 편지를 마쳐요. "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"(16:24). 그렇게 속을 썩인 교회였는데, 마지막 단어는 "너희 무리", 한 사람도 빼지 않은 모두였어요.

※ "마라나타"를 "주여 오시옵소서"로 읽을지 "주께서 오셨다(오신다)"로 읽을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어요. 요한계시록 22:20과 『디다케』의 쓰임 때문에 "오시옵소서"로 보는 사람이 많아요.

돌아보기
첫 성도들처럼 예수님을 "우리 주"라 부르며, 오늘도 "마라나타, 주여 오시옵소서" 기도합니다.
맺는 글
문제로 시작해서
"사랑"으로 끝나는 편지

고린도전서는 온갖 문제를 하나씩 짚는 편지예요. 그런데 끝으로 갈수록 바울의 목소리는 한곳으로 모여요. "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"(16:14). 파당도, 만찬도, 은사도 결국 이 한 줄로 풀려요.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 속에서 짜낸 것이 아니라, 십자가에서 몸을 내주신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 사랑이에요.

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포기하지 않았어요. 문제 많은 교회를 "성도"라 부르며 시작해서 "나의 사랑이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"로 끝냈어요.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부활하신 주님이 이 교회를 붙들고 계셨기 때문이에요. 그래서 우리의 수고도 헛되지 않아요.

"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
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
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
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
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" (15:58)

※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.